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(문단 편집) === 말년 === 악질 [[독재자]]로서의 행보로 인해 법정 최고형[* 로드리게스는 취임 후 파라과이에서 [[사형제]]를 폐지했다.]도 갈 뻔했으나 국외 [[망명]]이 허용되어 쿠데타로부터 이틀 뒤인 2월 5일에 [[브라질]]로 망명했다. 브라질로 망명한 스트로에스네르는 맏아들 구스타보와 함께 [[브라질리아]] 인근의 라고 술(Lago Sul)에 있는 '장관의 반도(Península dos Ministros)'라고 불린 [[부촌]]에 있는 수영장과 전용 엘리베이터가 딸린 침실이 8개나 되는 집[* 가격이 1,000만 [[헤알]](한화로 약 24억 원)에 달했다.]에서 살았는데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거나 파라노아 호수 인근에서 일광욕을 하러 나가는 것 외에는 이웃들조차 모습을 잘 보지 못했을 정도로 은둔 생활을 해 나갔지만[* 실제로 브리질에서 스트로에스네르는 외출할 때 항상 파라과이인 경호원을 동반한 채 차를 타고 갔다.] 때때로 자신의 저택에서 콜로라도 당원들과 파라과이 정치인들을 맞이하거나 발코니에 앉아 집 옆에 있는 어린이집의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. 브라질에서 스트로에스네르는 자중하면서 생활했는지 브라질리아에서 일어난 그 어떠한 정치적 스캔들에도 연루되지 않았다. 한편 스트로에스네르는 [[궐석재판]]에서 [[전쟁범죄]]와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사이에 [[1992년]] [[12월 22일]]에는 변호사 출신 인권운동가 마틴 알마다[* Martín Almada, 1937~. 1974년에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에 체포되어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 고문을 당했으며 석방 후 [[프랑스]]로 망명을 갔다가 1992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1993년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했다. [[2021년]] 12월 6일에는 [[에마뉘엘 마크롱]]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[[레지옹 도뇌르]] 훈장을 받았다. [[https://py.ambafrance.org/Decoration-du-gouvernement-francais-pour-M-Martin-ALMADA?xtor=RSS-1|참고 자료]]]에 의해 파라과이의 람바레시에서 파라과이를 위시하여 칠레,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군부정권의 비밀경찰의 만행들이 적나라하게 적힌 문서 70만 개가 보관된 '테러 아카이브(Archivos del Terror)'가 발견되었다. 이런 와중에 1993년 1월 8일에는 막내아들인 휴고 알프레도가 [[자살]]하는 일도 겪었으며 말년에는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라고 술에 있는 다른 단층집으로 이사해야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